[주일설교, 2022.12.11, 김진영 담임목사] 왕의 귀환 : 시바와 므비보셋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2년 12월 11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왕의 귀환 : 시바와 므비보셋 |
| 성경 본문 | 사무엘하 19장 24-30절 |
| 함께 읽은 말씀 | 마태복음 25:21, 23 |
| 영상 | https://youtu.be/QXahRMur2h0 (설교 약 31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머비보식·무비보셋·머위보셋"→므비보셋, "심의"→시므이, "바실레이"→바르실래, "네덜란드"→네 달란트, "뭐나 비유"→므나 비유, "위구노·미군호"→위그노)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설교는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떠났던 다윗이 왕으로 돌아오며 만나는 네 사람(시므이, 시바, 므비보셋, 바르실래)을 살피는 "왕의 귀환" 연속 설교 가운데 한 편입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도입 | 왕이 떠나 있는 동안 사람의 본성이 드러났고, 왕이 돌아오자 참모습이 확인되었다. 예수님 앞에서 나는 어떤 교인으로 서게 될까. |
| ② 시바 |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으나 "차원이 다른" 악하고 교활한 사람. 주인에게 불충했고 왕 앞에서 주인을 모함했다. |
| ③ 시바의 자리 | 왕이 귀환할 때 시바는 므비보셋을 데려오지 않았고, 시므이와 같은 편에 서 있었다. |
| ④ 므비보셋의 모습 | 발을 맵시 내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은 모습. 다윗은 보는 순간 자기가 성급했음을 알았다. |
| ⑤ 다윗의 판결 | 법대로라면 시바는 죽어야 하고 재산은 다 돌려야 한다. 그러나 다윗은 현실의 제약 속에서 "절반씩"이라는 타협안을 냈다. |
| ⑥ 므비보셋의 최선 | 자기 한계와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왕에 대한 감사와 충성을 보였다. |
| ⑦ 달란트 비유 | 마 25:21과 23절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열 달란트 남긴 종과 네 달란트 남긴 종을 예수님은 똑같이 칭찬하신다. |
| ⑧ 교회사의 예 | 사도 바울·마르틴 루터와 38년을 탑에 갇혀 "저항하라" 한 낱말을 새긴 마리 뒤랑. 예수님은 똑같이 칭찬하실 것이다. |
| ⑨ 심판주 | 초림의 예수님은 구원주, 재림의 예수님은 심판주. 교회 안의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신다. |
| ⑩ 결론 | 예수님은 다 아신다. 므비보셋처럼 살라. 그 힘은 받은 은혜에서 나온다. 은혜 안에서 강하라. |
3. 결론 — 예수님은 다 아신다, 므비보셋처럼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
- 언젠가 왕이신 예수님이 귀환하실 때 우리는 그분 앞에 서게 된다. 그분은 다윗 왕과 같지 않으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어중간하게 판결하지 않으신다. 완전한 의로움과 완전한 공의로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반드시 갚아 주신다.
-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간절히 기도하고 소원하는 것이, 주님 다시 오실 때 서울중앙교회 교인 모두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과 칭찬을 받는 교인으로 서는 것이라고 하셨다.
- 사람은 오해할 수 있다. 교인들도 나를 오해할 수 있고, 목회자도 알려고 애쓰고 수고하지만 다 알지 못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람을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열심과 부족함까지 다 아시는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것을 믿으라.
- 그러므로 므비보셋처럼 살라.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어제보다 오늘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살도록 수고하고 애쓰라.
- 므비보셋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이다. 죽여도 되고 죽여야 마땅한 원수의 집안인데, 이 왕은 자기를 긍휼히 여겨 살리고 원수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삼아 위로해 주었다. 그 왕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다.
- 우리가 시간과 물질과 노력과 인생을 복음과 교회를 위해, 믿음으로 살기 위해 쓰며 애쓰는 이유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라.
-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은혜가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그 은혜가 나를 새롭게 해야 우리 안에서 선한 것이 나온다.
- 바리새인을 조심하라.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없고 새로운 감격이 없는데 열심을 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자기 의로 빠진다. 불행한 일이다.
- 그래서 부탁하셨다. 말씀을 열심히 읽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라. 받은 은혜가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그 사람은 교만하지 않고 감사가 넘친다.
- 그런 사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서서 "내가 너를 안다. 너는 정말로 착하고 충성되었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는 신앙인으로 다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 끝에 주신 기도 제목은 하나였다.
- 착하고 충성된 신앙인 — "구원주로 오시고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 착하고 참 충성되었다고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의로운 왕으로 오실 것을 믿는다는 고백.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신앙인, 착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소원하는 기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날마다 새롭게 해 주시기를,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주님이 두 팔을 벌려 기쁘게 맞아 주시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늘 부르는 찬송("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처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좁은 길, 믿음의 길을 끝까지 잘 걷도록 은혜를 구했다. 믿음의 삶을 다 마치면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쁘게 안아 주시며 "너는 참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믿음의 삶을, 저항하면서 끝까지 잘 살았다"고 말씀해 주실 것을 믿고, 그 믿음과 감격으로 한 주간을 살게 해 달라는 기도.
5. 성경 본문 (사무엘하 19:24-30)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19:24 |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았다.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발을 맵시 내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다. |
| 19:25 | 그가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 왕이 물었다.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
| 19:26 | 므비보셋이 대답했다. "내 주 왕이여, 내 종이 나를 속였습니다. 저는 다리를 절기 때문에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고 했습니다." |
| 19:27 | "그런데 그가 저를 내 주 왕께 모함했습니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십시오." |
| 19:28 | "제 아버지의 온 집은 왕 앞에서 다만 죽을 사람들이었는데, 왕께서는 저를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사람들 가운데 두셨습니다. 제게 무슨 권리가 더 있어서 왕께 다시 부르짖겠습니까." |
| 19:29 |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
| 19:30 | 므비보셋이 아뢰었다.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가 전부를 차지하게 하십시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왕이 돌아오면 참모습이 드러난다
구약 성경을 읽으면 그 장면이 겹쳐 보이면서,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 주는 은혜가 있다.
- 다윗은 피난을 갔다. 도망갔다가 승리한 왕으로 귀환한다.
- 왕이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런데 왕이 피난을 가고 떠나 있는 동안 사람들이 자기 본성을 다 드러냈다.
- 왕이 돌아오고 나서 보니, 있을 때는 몰랐던 그 사람의 참모습이 왕 앞에 다 드러난다. 왕 앞에 드러난 교회의 참모습, 나의 참모습이 확인되는 것이다.
성경은 다윗이 왕으로 귀환하며 만나는 네 사람을 기록한다. 시므이, 시바, 므비보셋, 바르실래다. 목사님은 이 질문을 품고 말씀을 살피자고 하셨다. "왕이 귀환했을 때 나는 그 왕 앞에 어떤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 서게 될까. 예수님 앞에서 나는 어떤 교인으로 서게 될까."
6-2. 시바 — 차원이 다르게 악한 사람
오늘 본문이 없었다면 시바를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뻔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시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하게 드러난다.
- 학자들의 여러 견해가 있고 그것을 참고하되, 성경 저자가 쓴 말씀 자체를 보면 결론적으로 시바는 "제가 볼 때 나쁜 사람인데, 차원이 다른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다.
- 본문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사람이 왜 그때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나쁨을 넘어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교활하고 더 악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다.
다윗이 도망갈 때의 시바
다윗이 도망갈 때 나타난 시바의 모습은 상당히 괜찮았다.
- 나귀 두 마리, 떡 200개, 건포도 100송이, 여름 과일 100개,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져왔다.
- 나귀 두 마리에 실을 수 있는 정도이니 아주 많은 양은 아니다. 바르실래가 가져온 것과는 규모가 비교되지 않는다.
- 그렇지만 황망하게 도망가던 다윗에게 이렇게 음식을 가지고 찾아왔을 때 다윗이 받은 위로는 굉장히 컸을 것이다.
다윗이 "므비보셋은 왜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시바는 이렇게 말했다. "므비보셋은 왕이 도망가시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 사울 왕의 나라를 나에게 돌려줄 것이다' 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함이었다.
다윗은 몹시 화가 났다. 원수의 아들을 살려 자기 아들처럼 대했는데, 자기가 환난을 당할 때 배신하고 즐거워한다니 화가 나서 성급하게 므비보셋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 곧 사울 왕의 재산을 시바에게 다 주었다.
시바의 죄 두 가지
돌아와서 보니 시바가 지은 죄가 크다. 두 가지로 정리된다.
| 죄 | 목사님의 설명 |
|---|---|
| ① 주인에 대한 불충과 배반 | 므비보셋은 소식을 듣고, 걷지 못하니 "나귀를 준비해라. 다윗 왕에게 가자"고 명령했다. 시바는 그 말에 불순종하고 무시했다. 므비보셋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종이 정당한 이유 없이 주인을 무시하고 불충한 것, 그것만으로도 사형에 해당할 큰일이다. |
| ② 왕 앞에서의 무고와 모함 | 다윗 왕에게 가서 므비보셋의 마음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
시바는 정말 다윗을 도운 것일까
목사님은 시바가 다윗을 진심으로 도왔는지가 의심스럽다고 하셨다.
- 떡과 음식을 준비하게 한 사람은 분명히 므비보셋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도망간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왕을 위로해야겠다. 준비해라. 나귀를 준비해라"고 한 것은 분명히 므비보셋의 말이었을 것이다.
- 그것을 준비하는 가운데 꾀 많은 시바가 계산을 한 것이다. 도망가는 다윗에게 가서 거짓말을 하여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자기에게로 돌렸다.
- 그런데 시바가 그 상황에서 "다윗이 도망갔다가 성공하여 돌아올 것"이라고 정말 믿었을까. 그 부분이 굉장히 의심스럽다.
- 이런 것을 생각하면 시바는 보통 교인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악함이 아니라 시므이의 악함을 넘어서는 악함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성경을 묵상할수록 갖게 하는 사람이다.
다윗은 완전히 속았다. "시바 같은 사람이 충신이구나, 정말 신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6-3. 왕이 귀환할 때 시바가 서 있던 자리
목사님은 회중에게 물으셨다. "시바가 진실을 말했고 충성된 사람이었다면, 왕이 귀환할 때 누구와 함께 다윗을 맞으러 왔겠습니까?"
- 시바가 정직하고 충성되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므비보셋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 그런데 시바는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지 않는다.
- 시바는 시므이와 같은 편에 서 있다. 성경의 내용이 그렇다. 왕이 귀환할 때 시바는 시므이와 같은 편에 서서, 시므이가 죄를 용서받으러 오는 그 자리에 섞여 있다.
목사님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시고, 시바에게 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므비보셋으로 넘어가자고 하셨다.
6-4. 므비보셋의 모습 —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므비보셋은 왕이 귀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준비해서 내려왔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성급했구나. 시바가 거짓말을 했구나.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구나." 므비보셋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본문 24절이 그 모습을 전한다. 므비보셋은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발을 맵시 내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다. 그 기간이 몇 주였는지 몇 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 그쪽 사람들은 수염이 빨리 자랄 텐데, 한 주만 지나도 수염이 보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 몇 주 동안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다.
- 왜 그렇게 했는가. 피난 간 왕에 대한 슬픔 때문이다. 왕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왕의 고난이 나의 고난입니다" 하는 마음으로 다윗을 위해 간구한 것이다.
- 다윗은 그 모습을 보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시바가 거짓말했구나" 하고 알 수밖에 없었다.
다윗이 "왜 같이 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므비보셋은 이렇게 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다섯 살 때 떨어져서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귀를 준비해서 왕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내 종이 나를 속였습니다. 왕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다윗은 누가 의로운 사람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6-5. 다윗의 판결 — 현실의 제약 속에서 내린 타협안
목사님은 이 본문을 풀 때 가장 골치 아픈 점을 말씀하셨다. 의롭고 정의로운 왕이라면 시바와 므비보셋 사이의 일을 정의롭게 처리해야 하는데, 다윗은 예수님과 달리 현실적인 어려움과 제약 가운데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만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법대로, 정의대로 한다면
- 시바를 불러서 죽여야 한다. 왕 앞에 나와 무고했기 때문이다.
-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법정에서 거짓말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는데 그것이 무고와 거짓으로 판명되면 그 거짓말로 상대가 받았을 형벌을 무고한 사람에게 돌리게 되어 있다.
- 그러면 시바는 죽어야 한다. 자기 주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했고 주인에게 불충했다.
- 시바에게 주었던 모든 재산도 므비보셋에게 다 돌려야 한다.
의로우신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에는 완전히 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다윗은 현실적인 제약과 한계를 다 가지고 있다.
- 다윗은 시바처럼 악한 시므이도 죽이지 못한다. 죽이지 않는다.
- 그런 상황에서 시바를 불러 죽이거나 처벌하고 그가 가진 재산을 다 몰수해 돌려준다는 것은, 그날 다윗이 처한 여러 한계와 정치적 상황 속에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말씀을 연구하는 분들 대부분이 "다윗의 결정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다윗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다"고 본다.
다윗이 내린 결정
- 모든 토지와 밭을 일구는 사람은 시바와 그의 아들들이다. 일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돌려야 한다.
-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결정했다. "지난번의 성급한 결정을 번복한다. 너는 50%를 가져라." 므비보셋의 밭과 과수원을 시바와 그 아들들이 가꾸고 일할 것이니 다 빼앗을 수는 없어서, 현실적인 타협안을 낸 것이다.
6-6. 므비보셋 —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사람
목사님이 주목하자고 하신 사람은 므비보셋이다.
우리의 본성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본성이 있다.
- 탁월하고 능력 있고 재력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좋은 마음으로 대한다.
- 장애가 있거나 가난하거나 힘들어서 도와줘야 할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는 마음이 있다.
므비보셋은 왕족이다. 요나단의 아들이다. 그러나 어릴 때의 사고로 평생 불구로, 모든 사람의 관심과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 마길(자막에는 '마귀리'로 들림)을 만났을 때를 보면, 길르앗 쪽에 살던 마길은 "진짜 착한 사람" 같다.
- 그러나 시바 같은 사람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귀찮아한다. 주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무시한다.
므비보셋의 최선
므비보셋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다윗 왕을 대할 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 그는 직접 나가서 다윗을 도울 수 없다. 믿었던 종이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에 다윗에 대한 진심을 드러낼 길도 없다.
- 그런데 므비보셋은 자기가 가진 한계, 자기가 처한 어려움과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 몇 주인지 몇 달인지 알 수 없지만, 압살롬이 천하를 다 휘어잡은 것 같고 압살롬의 군대가 이길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예루살렘에 머물며 도망간 다윗을 위해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고 슬퍼하며 다윗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것도 공공연하게 그런 모습으로 살았다. 므비보셋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사울 왕의 천하가 돌아올 것이다", "압살롬이 다윗을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 셈이다. "나는 도망간 왕을 그리워합니다. 그 왕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그 왕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이 슬픔 가운데 지낼 것입니다."
- 다윗이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해 정말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보이며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6-7. 달란트 비유 —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를 똑같이 칭찬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을 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 나라의 판단 기준은 세상이 생각하는 기준과 많이 다르다.
(회중과 함께 마태복음 25:21, 23 낭독. 21절은 다섯 달란트를 맡아 열 달란트를 만든 종에 대한 칭찬이고, 23절은 두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는데 네 달란트를 만든 종에 대한 칭찬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23)
- 회중은 두 절을 읽었지만, 목사님은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 절만 적어 놓았다고 하셨다. 21절과 23절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보시기에 열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네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똑같다는 뜻이다.
두 종의 모습
| 종 | 목사님의 설명 |
|---|---|
| 다섯 달란트 받은 종 | 하나님의 은혜로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금수저" 같은 상황으로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남긴 것이 많다. |
| 두 달란트 받은 종 | 태어날 때부터 두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다. 믿지 않는 가정,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늦게 예수님을 믿었다. 그러나 므비보셋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았다. |
서울중앙교회의 교인들
- 서울중앙교회 70년 역사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교인처럼 열심히 충성 봉사하여 열 달란트를 남긴 교인, 하나님이 은혜로 쓰신 분이 있을 것이다.
- 또 70년의 역사와 앞으로의 역사를 통해, 두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으나 그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네 달란트를 남긴 교인들이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있을 것이다.
- 우리 눈에는 열 달란트 남긴 교인이 정말 귀하다. 사실 귀하다. 그러나 그 교인은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가 많다. 최선을 다해 열 달란트를 남긴 것이다.
- 받은 것이 한 달란트, 두 달란트밖에 안 되는 교인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남길 수 있는 것은 두 달란트나 네 달란트밖에 되지 않는다.
-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열 달란트 남긴 교인이 더 훌륭하고 믿음이 더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로운 왕이신 예수님은 똑같이 칭찬하신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똑같이 인정하신다.
므나 비유와의 차이
달란트 비유는 므나 비유와 다르다. 모두 똑같이 한 므나를 받았는데 남긴 것이 서로 달랐던 므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오늘 므비보셋을 볼 때 맞는 것은 달란트 비유다. 므비보셋은 두 달란트 받은 종과 같으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주인에게 진심 어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6-8. 교회사의 예 — 사도 바울, 마르틴 루터, 그리고 마리 뒤랑
교회의 역사에서 다섯 달란트를 받아 열 달란트를 남긴 것 같은 교인들은 우리가 쉽게 기억한다.
- 사도 바울 — 더 받았을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교회가 읽을 성경을 13권, 14권 기록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다 잘 안다.
- 마르틴 루터 — 목사님은 "저 같은 교인 열 명이나 스무 명을 모아 놓아야 루터와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하셨다. 루터를 계속 공부해 보면 그것을 알게 되며, 과장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루터에게 주신 은혜와 루터를 통해 하신 일을 보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열 명, 스무 명 이상 모아야 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
마리 뒤랑 (자막에는 '말이 듀랑', '말이 두랑'으로 들림)
목사님은 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하시며 "마리 뒤랑이라는 여자를 아십니까" 물으시고, 화면에 사진 세 장을 보여 주셨다.
| 사진 | 목사님의 설명 |
|---|---|
| 첫째 사진 | 프랑스 남부 해안 지역에 있는 콩스탕스 탑이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거부하고 개신교 신앙, 참 복음을 따라 살려 했던 신실한 위그노 신자들을 저 탑 안에 가두었다. 죽을 때까지 가두어 두는 감옥으로 1700년대에 사용되었다. |
| 둘째 사진 | 탑 안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 아래에 사람들을 가두어 놓았다. 참 복음을 따라 살겠다며 위그노 신자가 된 마리 뒤랑이라는 처녀가 열아홉 살에 저 탑에 갇혔다. |
| 셋째 사진 | 갇혀 있던 38년 동안 머리핀으로 벽에 새긴 글자다. |
-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점령에 저항했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같은 말이다. 새긴 낱말은 "레지스테"(저항하라), "우리는 저항합니다"라는 뜻이다(자막에는 '레지스트레르', '레지스테르'로 들림).
- 38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머리핀으로 벽에 그 글자 하나를 새겼다. 그 뜻은 이렇다. "나는 나의 참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저항합니다. 위그노 신앙을 버리면 언제든지 풀어 주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겠다는 유혹에 저항합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복음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위협과 환난과 고문과 핍박에 대해 우리는 저항합니다."
- 그 글자 하나를 쓰면서 38년을 살았다. 많은 사람이 그 감옥에서 살다가 죽었다.
- 38년쯤 지났을 때 한 사람(자막에는 '샤를르 더보'로 들림)이 그 지역의 책임자로 와서 콩스탕스 감옥을 방문했다. 들어가 보니 나이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감옥에서 살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병들어 있었고,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많았다. 그는 위그노가 아니었지만 자기 신앙 양심상 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통치자로서 사표까지 쓰면서 갇힌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 마리 뒤랑은 열아홉 살에 들어가 쉰일곱 살에,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고 풀려났다. 고향으로 돌아가 8년을 살다가 1776년에 죽었다.
두 사람이 예수님 앞에 선다면
| 사도 바울 | 마리 뒤랑 | |
|---|---|---|
| 한 일 | 1차·2차·3차 전도 여행, 스페인까지. 많은 교회를 세우고, 기적을 행하고, 성경을 많이 썼다. | 성경을 쓰지 않았다. 글자 하나를 새겼다. 전도한 적이 없고 기적을 베푼 적도 없다. 곁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여자 교인들을 돌아보며 산 것, 그 한 가지밖에 한 일이 없다. |
| 받은 것 | 은사와 달란트가 많다. 다섯 달란트 받아 열 달란트 남긴 사람처럼 귀하게 쓰였다. | 있는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
이 두 사람이 왕으로 오실 예수님 앞에 설 것이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겠는가. "너는 참 착하고 충성되었다." 사도 바울을 더 칭찬하시지 않는다. 똑같이 칭찬하실 것이다.
6-9. 시바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바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 시바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교활하고 계산적인 사람은 정말 잘 살았을 것이다. 자녀가 열댓 명이었으니, 사울 왕 재산의 절반을 차지하여 자녀들과 함께 아마 굉장히 지혜롭게, 부유하게 살았을 것이다.
- 그러나 왕이 귀환했을 때 그는 시므이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 참되신 왕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하실 때, 그가 회개하지 않고 살았다면 과연 어떤 자리에 서 있을지 굉장히 염려스럽다.
- 시므이는 나중에 솔로몬에게 징계를 받는다. 시바와 그 자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서는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6-10. 초림의 구원주, 재림의 심판주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초림과 재림으로 오신다.
- 성탄절에 감사하는 초림의 예수님은 구원주로 오셨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지금도 구원자로 우리를 부르신다.
- 그러나 재림하실 때는 구원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주로 오신다. 성경이 말하는 바다.
-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자기 앞에 불러 양과 염소로 나누신다. 모든 교인을 불러 알곡과 가라지로 나누신다. 교회 안에는 주님이 은혜로 부르신 알곡이 있고, 사탄이 교회 안에 뿌려 놓은 가라지가 있다.
이 비유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다
- 한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다.
-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는 다 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 교회 안에 양이 될 사람이 있고 염소가 될 사람이 있다.
- "우리가 언제 주님을 외면하고 무시했습니까?" 하고 말하는 사람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대접했습니까? 언제 주님이 감옥에 갇혔을 때 방문했습니까?" 하고 말하는 사람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다.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신다
- 심판주로 오실 주님은 우리의 삶과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신다.
- 왜냐하면 믿음은 행위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 믿음은 열매를 통해 드러나는 살아 있는 믿음이다.
이어지는 결론은 위 3장에 정리했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교회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므비보셋과 시바 이야기의 흐름
| 장면 | 내용 | 성경 |
|---|---|---|
| 사고 |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유모가 다섯 살 므비보셋을 안고 급히 도망하다 떨어뜨려 두 다리를 절게 되었다. | 삼하 4:4 |
| 은혜 | 다윗이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밭을 모두 돌려주고 늘 왕의 상에서 먹게 했다. 사울 집안의 종 시바와 그 아들들, 종들에게 그 밭을 갈아 소출을 거두게 했다. | 삼하 9장 |
| 모함 |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시바가 음식을 싣고 와서 므비보셋을 모함했고, 다윗은 므비보셋의 재산을 모두 시바에게 주었다. | 삼하 16:1-4 |
| 귀환 |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돌아올 때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1,000명과 함께 왔고, 시바도 아들 15명, 종 20명과 함께 왔다. 설교의 "시바는 시므이와 같은 편에 서 있다"가 이 장면이다. | 삼하 19:16-17 |
| 판결 | 므비보셋이 사정을 아뢰자 다윗이 밭을 나누라고 했다. | 삼하 19:24-30 |
-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언약은 사무엘상 18:3, 20:14-17에 나온다. 요나단은 자기 집안에 인자를 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 설교에서 말씀하신 위증에 관한 율법은 신명기 19:16-19이다. 거짓 증인이 형제에게 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라는 규정이다.
- 시므이가 훗날 솔로몬에게 처벌받는 이야기는 열왕기상 2:36-46에 있다.
위그노와 콩스탕스 탑
- 위그노는 16~18세기 프랑스의 개혁파(칼뱅 계통) 개신교 신자를 가리킨다. 1598년 낭트 칙령으로 제한된 신앙의 자유를 얻었으나, 1685년 루이 14세가 이를 폐지하면서 개신교 예배가 금지되고 박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프랑스 개신교인이 법적 지위를 되찾은 것은 1787년 관용 칙령 때다.
- 마리 뒤랑(Marie Durand, 약 1711~1776)은 프랑스 남부 비바레 지방 출신으로, 오빠 피에르 뒤랑은 숨어서 사역하던 개신교 목사였고 1732년에 처형되었다. 마리는 1730년에 붙잡혀 1768년에 풀려났으며, 설교에서 말씀하신 38년, 1776년 사망과 일치한다.
- 탑 한가운데 우물 모양 구멍의 돌 테두리에 새겨진 낱말은 옛 철자로 "REGISTER"이며 "저항하라(résister)"는 뜻으로 읽는다. 마리 뒤랑이 새겼다는 것은 오래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 갇힌 여인들을 풀어 준 사람은 랑그도크 지방 총독이던 보보 공(Prince de Beauvau)으로 알려져 있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예루살렘 | 다윗의 수도. 므비보셋은 압살롬이 점령한 이 성에 남아 있었다. |
| 요단강 | 다윗이 피난 갈 때 건넜고 돌아올 때 다시 건넌 강. 귀환하는 왕을 맞는 장면들이 이 강가에서 벌어진다. |
| 마하나임 | 요단 동편 길르앗 지역의 성읍. 다윗이 피난 중에 머문 곳이다(삼하 17:24). |
| 길르앗·로드발 | 요단 동편 지역. 므비보셋은 다윗이 부르기 전까지 로드발에 있는 마길의 집에서 살았다(삼하 9:4-5). |
| 에그모르트 |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성곽 도시. 콩스탕스 탑이 여기에 있다. 탑은 13세기에 세워졌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므비보셋 |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역대상 8:34에는 '므립바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 시바 | 사울 집안의 종. 아들 15명과 종 20명을 두었다(삼하 9:10). 설교의 "자녀가 열댓 명"이 여기서 나온다. |
| 마길 | 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기 집에 두고 돌보았고(삼하 9:4), 다윗이 피난 왔을 때 바르실래 등과 함께 침상과 양식을 가져왔다(삼하 17:27-29). |
| 시므이 | 사울 집안 사람.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졌고(삼하 16:5-13), 다윗이 돌아올 때 가장 먼저 나와 용서를 구했다(삼하 19:16-23). |
| 바르실래 | 길르앗 사람, 나이 여든의 큰 부자. 마하나임에서 다윗을 공궤했다(삼하 19:31-39). |
| 압살롬 | 다윗의 아들. 반역하여 예루살렘을 차지했으나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 죽었다(삼하 15-18장). |
| 사도 바울 | 신약 성경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된 서신은 13권이다. 히브리서를 바울의 글로 보면 14권이 되는데,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설교의 "13권, 14권"이 이 뜻이다. |
| 마르틴 루터 | 독일의 종교개혁자(1483~1546). 1517년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다. |
7-4. 문화
- 발을 맵시 내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음: 고대 이스라엘에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깊은 슬픔과 애도의 표시였다. 므비보셋은 왕이 떠난 기간 내내 상을 당한 사람처럼 지낸 것이다. 압살롬 치하의 예루살렘에서 이런 모습은 "나는 다윗 편"이라는 공개적인 표시가 된다.
- 왕의 상에서 먹는 자: 왕의 식탁에 늘 함께 앉는다는 것은 왕자와 같은 대우를 뜻한다(삼하 9:11).
- 새 왕조와 옛 왕가: 고대 근동에서는 새 왕이 옛 왕가의 남은 후손을 제거하는 일이 흔했다. 므비보셋이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다만 죽을 사람"이었다고 말한 배경이며, 설교에서 "죽여도 되는 원수의 아들"이라고 하신 뜻이다.
- 달란트: 본래 무게 단위이자 가장 큰 화폐 단위.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한 데나리온)으로 약 6,000일치, 곧 20년 가까운 품삯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두 달란트밖에"라 해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 므나: 달란트의 60분의 1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 므나 비유(눅 19:11-27)에서는 열 종이 똑같이 한 므나씩 받고, 남긴 만큼 다른 상을 받는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초림(初臨)·재림(再臨) | 초림은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처음 오신 것(성탄), 재림은 마지막 날에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것. |
| 구원주·심판주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재림 때에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고후 5:10) 된다. |
| 양과 염소 | 마태복음 25:31-46. 인자가 영광으로 올 때 모든 민족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 나눈다. 양쪽 모두 "우리가 어느 때에…" 하고 되묻는다. 설교에서 인용하신 물음이 이것이다. |
| 알곡과 가라지 | 마태복음 13:24-30, 36-43.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렸고, 주인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었다가 가른다. |
| 무고(誣告) | 없는 죄를 꾸며서 고발하는 것. |
| 행위와 믿음 | 구원은 은혜로 믿음을 통해 받으며(엡 2:8-9),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설교의 "믿음은 행위로 열매를 맺는다"가 이 뜻이다. |
| 중심을 보신다 |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
| 은혜 안에서 강하라 |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딤후 2:1). |
| 자기 의(自己義) | 자신의 선행과 종교적 열심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로로 삼는 태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눅 18:9-14)가 대표적이다. |
| 긍휼(矜恤) | 불쌍히 여겨 돌보는 마음.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함께 읽은 구절은 성경 본문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성경 밖 고유명사는 자막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듀랑'은 마리 뒤랑으로, '콩스탕스라는 탑'은 에그모르트의 콩스탕스 탑으로 보았습니다. 석방을 결정한 사람은 자막에 '샤를르 더보'로 들리며, 일반 자료에서는 보보 공(샤를 쥐스트 드 보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긴 낱말은 자막에 '레지스트레르·레지스테르'로 들립니다.
- 마리 뒤랑이 글자를 새겼다는 것과 머리핀으로 새겼다는 것은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일반 자료에서는 이 글자를 그녀가 새겼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소개하며, 새긴 도구는 자료마다 다르게 전합니다. 수감 당시 나이도 출생 연도를 달리 보아 다르게 적는 자료가 있습니다.
- 시바의 자녀 수는 자막에 '열대명'으로 들려 "열댓 명"으로 적었습니다. 성경에는 아들이 15명으로 나옵니다(삼하 9:10).
- 므비보셋이 "나귀를 준비하라"고 명령했으나 시바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 음식을 준비시킨 사람이 므비보셋이었으리라는 것은 본문 26절을 바탕으로 목사님이 풀어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 설교 마지막 기도에서 언급하신 찬송 제목은 자막으로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구절만 적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와 히브리서 저자 문제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